[칼럼] 文은 남북문제 ‘脫안보화’ 올인…김정은은 ‘핵 강화 선군정치’ 천명

-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전통적으로 미국 선거기간 동안 도발 횟수를 늘렸다. 김정일 정권 시기에 미국 선거 전후 5.5주 시점에 도발했던 북한이 김정은 정권 시기에는 평균 4.5주로 짧아졌다. 그런 북한이 2020년 11월 미국 대선 전에 조용했고, 대선 후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핵·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더 기다려봐야 하겠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실패, 경제제재 지속,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해 북한의 내부 사정이 간단치 않아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대북 구애(求愛)에 올인했지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핵 무력 강화’를 통해 선군(先軍)정치로의 복귀를 시사했다. 문 정부가 섣불리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해제를 추진하면 북한의 비핵화는 날아가게 될 수도 있다. 또 정부가 관용적 대북정책만 고집할 경우 조 바이든 미국 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로 회귀해, 남북·한미·미북 관계가 중층적으로 악화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북, 선군정치 복귀 시사

대내외 정책 정비를 위해 지난 1월 5일 시작돼 12일 막을 내린 북한 제8차 당 대회의 키워드는 ‘핵 무력 건설’과 ‘군사력 증강’이었다. 김정은은 개회사에서 “경제발전 5개년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했다”며 경제 실패를 자인했다. 그러면서 내놓은 대책이 자력갱생이고 군사력 증강이라니 합리적 국가경영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1월 9일 사업총화보고를 통해 기존 핵전력에 만족하지 않고 전술핵무기와 초대형 핵탄두를 생산해 핵 선제공격능력과 핵 보복타격능력을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하고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한편, 핵 추진 잠수함과 수중발사 핵 전략무기를 보유하겠다고 밝혔다.

김정은은 또 미국이 북한의 ‘최대 주적(主敵)’이며, 누가 집권하든 대북정책이 바뀔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맞춰 “비핵화는 이미 물 건너갔으니 핵 군축을 통해 접점을 찾아가자”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유엔 제재에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경제적 어려움이 배가되는 상황에서 군사력 증강 카드를 들고나온 것은 ‘핵-경제 병진’ 노선을 포기하고 선대의 선군정치로 복귀하는 것일 수 있다. 미·중 전략경쟁 구도를 이용해 중국으로부터 최소한의 경제 지원을 얻어낸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다.

◇文 정권과 ‘남북관계 脫안보화’

기실 2020년은 김정은에게 최악의 한 해였다.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6월 30일 판문점 미·북 정상회동을 하고, 이후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차례 친서를 보내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재선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에서 김 총비서가 핵은 그대로 가진 채 제재 해제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며 돌파구 모색보다는 북핵 ‘관리 모드’로 들어갔다. 게다가 북한은 2019년 말 중국에서 발발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신속히 북·중 국경을 폐쇄했다. 이는 중국으로부터 생필품을 조달해야만 돌아가는 ‘장마당 경제’를 사실상 포기하는 조치였다. 김정은은 그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기대를 걸고 김여정을 미국에 보내 반전을 노렸지만, 기회를 잡지 못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다.

2020년 남북관계는 남측이 북측에 일방적으로 구애를 한 해였다. 북한이 여전히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미련을 가졌던 반면, 문재인 정부는 역설적으로 미·북 관계 개선이 쉽지 않다고 보고 남북관계 개선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북한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해도,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서해상에서 사살해도, 문 정부는 무제한의 인내심을 보여줬다. 국내정치 환경이 불리해지는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탈안보화(desecuritization)’해 정권 재창출을 위한 여론 반전을 도모했다.

◇남북·한미·미북 관계의 미래

그러나 김정은은 당 대회에서 남북관계 개선이 “전적으로 남측의 태도에 달렸다”고 함으로써 문재인 정부의 ‘분발’을 촉구했다. 한·미 동맹의 틀 속에 갇혀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재개해 남북관계를 ‘재안보화(resecuritization)’할 경우 남북관계 개선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대북전단 금지법’ 제정으로 인해 미국 조야(朝野)에서 초당적 비판을 받는 문 정부에는 엄청난 부담이다. 김정은 정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만든 법이 한·미 관계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니, 북한의 한·미 이간계(離間計)가 제대로 먹힐 상황이다.

국내정치적 이유로 문재인 정부가 이러한 상황을 방치한다면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더욱 반대하고, 북한과의 핵 협상보다는 아무것도 안 하는 ‘전략적 인내’로 회귀해 남북관계, 한·미 관계, 미·북 관계가 중층적으로 악화하는 상황으로 갈 것이다. 여당 일각에서 “2021년엔 김정은 총비서의 답방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한 것은 한·미 관계와 안보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남북 ‘깜짝쇼’를 통해 정권 재창출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비핵화와 ‘관용적’ 대북정책

문재인 정부에 주어진 시간은 2021년 1년뿐이다.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를 국내정치로부터 분리해 미국보다 한국이 더 냉철히 접근해야 제대로 된 진전을 이룰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북 제재를 허무는 실책을 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바이든 새 행정부의 외교안보팀 구성은 6∼7월쯤 돼야 끝날 것이고, 그후에도 대북정책 종합 검토에 들어갈 것이다. 결국, 구체적 비핵화 조치보다 북한이 핵 능력을 확대하지 않도록 핵 동결을 미국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북한이 당연히 취해야 할 핵 동결 조치에 대해 제재 완화라는 ‘선물’을 받는 것은 적절치 않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한번 허물기 시작하면 북한이 불가역적인 비핵화 조치를 하는 단계에 도달하기도 전에 중요한 제재가 다 날아가 결국 비핵화를 못 하는 지난 30년간의 실수를 또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안보가 아닌 평화문제로 바라보는 문재인 정부는 2021년 남북관계를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관용적’ 대북정책을 지속할 것이다. 현 정부는 김 총비서 답방에 매달리면서 문 대통령이 강조한 북·미 대화와 남북 대화에서 대전환을 이루기 더욱 힘든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일보, 2021-01-14]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0114010302420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