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英 떠난 유럽 안보… 프랑스는 “EU 독자노선” 독일은 “나토 강화”

-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장 모네 석좌교수

국제무대에서 경제적 거인이면서 군사적 난쟁이는 누구인가? 유럽이 종종 받는 비판 중 하나는 군사력을 비롯한 안보 역량의 상대적 부재였다. 유럽연합(EU) 내 외교안보 분야의 핵심 축이었던 영국이 탈퇴하고, 미국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내의 갈등이 심화되며 유럽은 안보적으로도 점점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며 대서양 동맹의 복원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기는 했지만, 방위비 분담 증가와 유럽의 독자 안보 역량 증진의 필요성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나라는 브렉시트로 인해 유럽 내에서 유일한 핵 억지력을 보유하게 된 프랑스이다. 핵무기의 ‘자가 보유국’인 프랑스는 NATO 체제 하에서 미국의 핵 자산을 공유하는 독일을 비롯한 이웃국과 다른 이해관계를 가져왔다. 실제로 프랑스는 냉전 시기의 대부분을 NATO 체제 밖에서 독자 노선을 걸어왔다. 전통적으로 프랑스는 유럽 통합 과정에서 언제나 앞으로 나서고 싶어 했다. 만평으로 그려지는 마크롱 대통령의 머리 위에는 종종 “나를 따르라”는 나폴레옹 모자가 씌워지기도 하고, 위대한 프랑스를 외치는 ‘작은 드골'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한다. 프랑스는 유럽이 외교안보에서도 독자적인 주권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과정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한다. 그리고 화려한 수사가 뒤따른다.

독일은 언제나 신중하다. 실제 가지고 있는 것보다 늘 카드 하나를 덜 꺼내놓고, 말을 아낀다. 프랑스와 유사하게 군사비 지출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독일은 재무장을 하지 않겠다는 2차 대전 이후의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독일의 ‘전략적 기권’은 초기 유럽 통합을 원활히 만들기도 했지만, 반대로 유럽연합이 군사안보적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의 힘은 탄탄한 산업과 금융의 경쟁력에서 나온다. 유럽의 많은 국가는 실제로 독일의 경제적인 리더십을 부인하지 않는다. 러시아에 대해서 가장 실질적인 목소리를 내고,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주체도 독일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파트너십은 여러 차원에서 강조되어 왔다. 브렉시트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하고, 코로나 사태로 또 다른 위기를 맞은 유럽연합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두 나라의 지도력이 불가피해졌다. 실제로 2019년 양국의 친선 협력을 재확인한 아헨조약에서도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외교·군사적인 공조 체제를 강화하고자 천명했고, 코로나로 인한 경제 회복 조치에서도 프랑스와 독일의 밀월 관계는 성공적으로 작동되었다. 그러나 프랑스가 주창하는 유럽의 독자 노선은 독일에 큰 호소력을 가지지 않는다. 독일은 특히 안보 문제보다는 현실주의적인 입장에서 NATO와 미국의 역할에 방점을 둔다.

러시아의 위협을 더 가까이 느끼는 중·동구 유럽과 발트해 연안국들은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의 홀로서기에 의구심을 느낀다. 프랑스의 핵우산이 다른 인접국까지 씌워질 것이라고 믿지 않고, 독일의 군사력 팽창도 역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국 믿을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폴란드는 독일 주둔 미군의 재배치가 논의될 때마다 가장 반색하며 유치를 희망하고,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같은 발트해 연안국들도 유럽 지역 내 미국과 NATO의 안보 위상이 유지되기를 희망한다.

‘전략적 자율성’에 대한 논의는 지난 수년간 유럽에서 다시 부상해 왔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와의 갈등은 대서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유럽의 간극을 더 벌려놓으며, 유럽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보다 확실한 대안을 요구했다. 그러나 안보적 차원에서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군사력과 정보력, 그리고 통합된 외교적 의사 결정이 요구된다. 지금의 유럽 상황에서 이를 뒷받침하기는 난감한 상황이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유럽 경제가 극심한 침체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홀쭉해진 지갑을 가지고 군사안보 예산까지 늘릴 여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 와중에 핵 확산과 미사일 방어, 테러, 그리고 난민 문제는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강조한 대서양 동맹과 다자주의의 복원은 유럽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방향이다. 그러나 외교에 공짜 점심은 없다.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은 유럽에 또 다른 어려운 선택을 강요한다. 미국은 화웨이를 비롯한 대중국 제재에 유럽이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요구해 왔고, 유럽 역시 기존의 대중국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은 유럽에서도 위협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남부 유럽과 중·동부 유럽 국가들은 실제로 중국의 경제적 투자가 아쉬운 상황이다. 또한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은 유럽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기회이기도 하다. 안보와 경제, 미국과 중국, 그리고 동맹과 자율이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유럽의 고민은 깊어간다. 유럽연합이라는 한배에 올라타서 홀로서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유럽의 여러 나라는 각자 서로 다른 셈을 하고 있다. 손을 놓지 말자고 외치면서, 동상이몽의 긴 밤을 보내고 있다.

[조선일보, 202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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