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짝짓기 외교전’ 호루라기 울렸다

-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소장

어릴 적 ‘둥글게 둥글게’ 노래를 부르며 원을 그리다가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며 숫자를 외치면 재빨리 짝을 짓는 게임이 있었다. 살아남은 경우는 안도감과 짜릿함에 깔깔거렸지만, 실패하면 벌칙을 받거나 원 밖으로 방출되기 때문에 긴장감과 두려움도 꽤 컸다. 이 놀이의 기억이 왜, 미국도 중국도 앞다퉈 다자외교를 하겠다고 나서는 작금의 국제관계를 보며 떠오를까?

최근 국가 간 협력을 원칙으로 하는 ‘다자주의’가 미·중 패권 싸움이 치열한 외교·안보 현장의 화두가 되고 있다. 본디 다자주의란 3개 이상의 국가가 국익과 국제 협력의 균형을 추구함으로써 국가 간 실질적인 갈등을 줄이고 상호 의존의 국제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접근 방식이다. 동아시아에서는 다른 지역과 달리 다자주의나 다자 안보 협력이 부족했다. 과거 중화 중심의 위계적 질서와 냉전기 미·소 강대국 진영 정치로 인해 수평적 다자주의를 경험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유럽과 남미에서 다자주의적 접근 방식을 택했던 미국이 동아시아에서는 자국이 배제된 다자주의 대신 통제가 쉬운 양자주의를 선호했다.

다자주의와 동맹을 통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복원을 기치로 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동아시아 지역 차원에서도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로 이뤄진 다자안보협력체) 같은 다자동맹이 확대·강화되고 있다. 또, 바이든은 ‘트럼프 정책 갈아엎기’(ABT) 와중에도, 도널드 트럼프의 구상인 인도·태평양(인태)전략을 계승해 ‘내 편 모으기’에 한창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중국을 혼자 때려잡으려 슈퍼맨을 자처했다면, 바이든은 대중(對中) 포위 전선을 통한 스파이더맨 전략을 펴는 것으로 평가한다.

중국은 경제적 부상과 재정적·인적 기여를 통해 다자기구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적극 모색해 왔다. 특히, 트럼프가 국제기구·협약을 무효화·무력화(無力化)한 ‘미국의 빈틈’을 파고들어 다자외교 무대에서 자국의 입지를 굳혔다. 육상·해상 실크로드 인프라를 구축해 60여 국가를 중국과 연결하려는 일대일로 전략이나, 14개국과 체결한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은 지역 다자 협력을 표방하며 자국의 국제관계 이념과 주장을 강하게 표출한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중국식 다자주의는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남중국해 문제,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강행 등에서 보듯이 실제로는 자국의 이익과 정치·외교적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국제법이나 규범을 무시하고 군사적·경제적 지렛대(leverage)를 이용해 포식자적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바이든 취임에 앞서 서유럽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미국의 인태전략에 동참하는 정책을 발표하고, 남중국해에 군함을 파견할 계획을 세웠다. 호주의 경우,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을 표명했다가 중국의 대규모 경제적·인적 보복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호주가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연합 군사훈련을 하고, 반(反)화웨이 캠페인에 참여하며, 홍콩국가보안법에 반대 공동성명을 낸 것과도 무관치 않다. 하지만 호주는 중국의 조치에 굴하지 않고 자국의 가치들을 굳건히 유지할 것이라 했고, 미국은 적극적 지원 의사를 밝혔다. 아마도 이들 국가는 불확실한 국제 정세 속에서 ‘인류 보편적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국가군들은 장기적으로 항상 승리자가 된다’고 한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폴 새뮤얼슨과 같은 대경제학자들의 말을 귀담아들은 듯하다.

이제 짝짓기 전쟁이 본격화했다. 호루라기가 울리면 어느 한 그룹에 재빨리 편입돼야 한다. 미·중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거나 남북관계나 국내정치적 목적으로 외교를 도구화한다면, 고립무원 신세를 자초할 것이다. 영국·호주·일본처럼 미국에 신뢰를 주는 동맹이 되려면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인권·민주주의·시장경제와 같은 가치와 규범을 공유하는 ‘동맹스러움’을 견지해야 한다. 대북 문제에 대한 우리 입장이나 (더구나) 북한 입장을 미국 새 행정부에 강의하려 들거나, 중국의 반발을 의식해 쿼드 참여를 우회적으로 피하는 행동은 스스로 우리를 원 밖으로 방출시키는 악수(惡手)가 될 뿐이다.

[문화일보, 2021-02-18]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0218010330110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