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동맹 강화하는 韓美회담이어야 한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소장

 

195310, 1인당 평균소득 65달러에 불과한 최빈국 대한민국은 세계 최강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통해 동맹을 맺었다. 68년이 흐른 지금까지 우리 사회 내에서는 이를 두고 공산 세력을 막아내고 번영과 안정을 이룬 원동력이라는 주장과 대미(對美) 군사적 종속을 심화시킨 불평등 조약이라는 비판이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고래와 새우의 동맹이 미국을 안보협약으로 붙잡아 두려는 이승만 대통령의 벼랑 끝 전술이 얻어낸 성과였다는 점이다. 미국은 유엔군과 공산군 간 휴전협정 당시 반공포로 석방, 북진통일 주장 등을 통해 한·미 동맹 없는 휴전에 결사 항전한 이 대통령을 고집불통, 술수의 달인이라 비난했다. 미 군부는 그를 제거하고자 에버레디(Ever-Ready) 작전까지 계획했으나, 결국 동맹조약에 서명했다. 이 대통령은 한쪽에 대한 외부공격을 다른 한쪽에 대한 공동위험으로 규정한 조항과 더불어, 전쟁 재발 시 미국의 자동 개입을 보장하는 주한미군 주둔을 조약에 넣는 데 성공했다. 그는 구한말 고종이 실패한 연미(連美) 악몽을 떠올렸던 게 아닐까?

 

1882년 고종은 유생들의 반대에도 청·일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방안으로 친미정책을 택하고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그의 결정은 1880년 수신사 김홍집이 일본에서 만난 청 외교관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가져온 것에서 비롯됐다. 그 골자는, 열강의 난립 속에 약소국 조선이 살길은 연미(連美), 영토적 야심이 없고 천하 으뜸 부국인 미국과의 연대이다.

 

고종은 한쪽이 제3국의 불공경모(不公輕侮)로 부당하게 위협 받으면 서로 돕는다는 조약에 근거해 미국이 조선을 지켜줄 것으로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미국은 19057월 필리핀과 조선에 대한 미·일 서로의 지배를 묵인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하며 조선에서 등을 돌렸다. 미국은 한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별다른 방어 조치도 없이 철군했고 오래지 않아 6·25전쟁이 발발했다. 그러니 이 대통령으로선 한반도 유사시 인계철선을 명기한 동맹조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한국은 세계 10위 경제대국이자 국방과학기술 수준 9위로 자리매김했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이제 동맹 중독또는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반영하듯 문재인 정부는 미·중 갈등 구도에서 전략적 균형외교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일각에선, 과거 이 대통령의 한·미 동맹 체결을 위한 지나친 구애과정이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해 미국이 전시 작전통제권을 가져갔다고 주장한다.

 

내일 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첫 대면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우리 정부는 미·북 대화 재개 및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에 최우선순위를 둘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백신 공급과 한국 내 위탁생산, 반도체와 배터리 등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참여가 주의제에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중국 견제에 방점을 두고 있는 미국으로선 대중 전략에 대한 한국의 대응, 가치와 뜻을 공유하는 국가군에 한국이 동참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쿼드(Quad)’ 참여 여부와 한··일 공조 복원뿐 아니라 한·미 연합훈련 축소·중단 문제 및 북한·중국의 인권문제에 대해 양국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다면, 이는 이번 정상회담의 성패를 가르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더 궁극적으로 한·미 동맹의 성격과 목적에 대한 이견으로 이어져 동맹의 생명인 신뢰가 무너질 경우, 미국이 한·미 동맹에 기대하는 전략적 이익은 물론 방위공약 준수를 위한 동기부여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흔을 바라보는 동맹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한·미 관계를 냉전 동맹으로 치부하고 군사주권이나 자주라는 말로 국민 감성을 자극하기에는 북한 핵 위협과 중국의 군사력 팽창 규모로 인한 우리의 안보 상황이 너무나 위중하다. 북한 도발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실효 조치 확보 및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가진 주변 강대국에 대한 대항마로서 한·미 동맹은 여전히 우리 외교·안보의 근간이다. 아무쪼록, ·미 양국의 협력 강화가 마주 앉은 두 정상에게 가장 중요한 회담 의제일 뿐 아니라 동맹의 목표임을 확인하는 자리이길 바란다.

 

[문화일보, 2021-05-20]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05200103341100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