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7·27 휴전 교훈은 남북 군사력 균형
김천식 (前 통일부 차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발효되고 한반도에서 포성이 멎었다. 그 후 68년간 한반도에서는 불안한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무엇으로 한반도 평화가 유지되는가? 세계사를 볼 때 적대세력 간에는 평화 의지나 구호 또는 평화협정으론 평화가 지켜지지 않는다. 평화 유지의 필수조건은 군사력 균형이다. 6·25전쟁은 남북한 간 무력의 심각한 불균형에서 비롯됐다. 북한의 도발에는 소련·중국의 공모와 지원이 있었다. 미국이 즉각 개입했고, 이어 중국이 참전함으로써 한반도 전쟁은 국제전이 됐다. 그로 인해 양측의 군사력은 균형을 이뤘고, 더 이상의 전쟁은 무의미한 상황에서 정전이 이뤄졌다. 정전협정에 따라 1954년 4월 제네바에서 열린 한반도 정치회담은 한마디로 선전선동으로 얼룩진 난장판이었다. 협상에 의한 한반도의 평화를 이룩하는 게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 장면이었다.
북한은 분단 초기부터 군사력 우위를 추구했고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소련과 군사 협력이 중단된 상황에서는 악착같이 핵무기를 개발해 역시 대남 군사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남북한 간 군사력 불균형을 상쇄한 건 주한미군이다. 그런데 주한미군은 고정된 게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지난 13일 워싱턴포스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면 한국과의 동맹을 날려 버리겠다고 말했다는 보도를 했다. 그는 2018년 6월 미·북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주한미군을 다 철수시키고 싶다고 했다. 과거에도 우리의 의사와는 반대로 주한미군 철수가 추진된 적이 있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괌 독트린에 따라 1971년 미 7사단이 철수했다. 이어 지미 카터 대통령이 느닷없이 주한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겠다는 공약을 했고,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다가 중단했다. 1990년 탈냉전 후 다시 주한미군 철수가 진행됐다. 이른바 ‘넌·워너법안’에 따라 1991년부터 3단계에 걸쳐 주한미군을 거의 다 철수하기로 하고 1단계 7000명을 철수했으나, 북한의 핵 개발로 중단됐다. 그런데 다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한 것이다. 해외 주둔 미군 철수는 올해 아프가니스탄에서뿐만 아니라, 과거 여러 지역에서 보듯이 일방적이다.
6·25전쟁 후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현실적인 힘은 주한미군이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한반도 평화의 최종적인 주체는 남북한이다. 한반도 평화가 깨지면 피해 당사자는 한민족이다. 한반도 평화를 남이 먼저 걱정하고 우리의 안전을 남의 나라 젊은이들에게 생명을 내놓고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옳지도 않다. 한반도에서 진정으로 평화를 유지하려면 남북한이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한 협상에 진지하게 나온 적이 없다. 북한은 그 문제를 미국과 협상하겠다고 한다. 한반도의 주인인 남한을 제쳐 두고 미국과 협상하겠다는 것은 자주와도 거리가 멀고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다. 미국은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데 어디까지나 우리의 보조자일 뿐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공고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북한 간의 군사력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 그 기반 위에서 남북한이 대화를 통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 평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1991년 12월 북한은 불가침과 남북 평화 체제 구축에 합의했었다. 그때는 정세 변화로 인해 남북 간 군사력 균형이 이뤄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북한 간 군사력 균형이 이뤄지지 않으면 북한은 남한을 평화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평화를 아무리 외쳐도 그것이 공허하고 남북관계가 더 나빠진 이유도 거기에 있다.
북한은 이제 군사력으로 통일을 하겠다는 것을 당 규약에까지 올려놓고 있다. 3자, 4자 또는 6자 한반도 평화협정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남북 간 군사 불균형이 존재한다면 이는 매우 위험하다. 책임 주체도 모호한 다자 협정으로는 한반도 전쟁을 막지 못한다. 8000만 한민족의 생명과 자유가 걸린 문제를 그런 것에 맡길 수 없다. 그건 주변국에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근거만 만들어 준다. 본질은 남북한이 주인이고 군사력 균형이다. 갈 길이 멀고 어렵지만 이를 회피하거나 건너뛰려 해서는 안 된다.
[문화일보, 2021-07-27]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07270103301100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