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프간 비극 타산지석과 올바른 통일

김천식(前 통일부 차관)

 

지난 76주년 광복절 날 서울에서는 친일파 논란이 있었고, 카불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붕괴됐다. 두 사건의 뿌리에는 국민 분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아프간은 수많은 부족이 아주 오랫동안 분열하고 갈등해 온 터라 현대국가 건설이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정부는 실패하고 탈레반 반군에 항복했다.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수도 카불 함락 직전에 국민을 내팽개친 채 외국으로 도망쳤다. 아프간의 많은 국민은 살육의 공포 앞에 방치됐는데, 그는 돈다발을 잔뜩 챙겨 갔다는 소문도 있다. 이번 아프간 사태는 현대식 무기나 동맹국이 나라를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국민이 분열하고 지도자가 무능하며 부패하면 나라는 망하게 돼 있다.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토벌된 뒤에야 남이 그 국가를 토벌한다.’(맹자 이루장구)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 분열은 그 정도가 심하다. 광복절 경축식까지 미래의 희망을 나누는 잔치가 아니라 친일파 논쟁을 일으키고 국민 분열을 부추기는 행사가 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일제 식민지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로서는 지금에 와서도 친일파 논란이 일어나는 것이 생뚱맞다. 친일파는 일제 식민지배에 협조했던 사람들이다. 일본과 선린 우방으로서 협력하고 교류하면서 잘 지내자는 사람들을 친일파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까지 그렇게 몰아붙이면 문재인 정부 포함해서 대한민국 현대사가 모두 친일로 얼룩지게 된다. 생물학적 나이로 보아 친일파는 모두 죽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거의 다 해방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고 일제에 부역하거나 일제의 식민지배를 찬동하거나 우리의 국익보다 일본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모든 것이 천지개벽했는데도 때때로 식민지배의 악몽을 되풀이하면서 대한민국의 성장 과정을 폄훼하고 멀쩡한 나라를 지질한 나라로 만들며 스스로 열등감에 빠져드는 이유는 무얼까? 가장 큰 원인은 남북의 분단에 있다. 지금 21세기 역사의 시계가 돌아가고 있지만, 남북한 국토분단의 시계는 19458월 그 시점에 그대로 멈춰 있다. 그 시점에는 일제의 기억이 생생했고 친일 청산과 건국이 한민족의 시대정신이었다. 해방공간에서 모두가 가난했고, 대다수 한민족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른 채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지를 두고 좌우가 격돌했다.

남북의 분단은 76년 전 그 후진적이고 음산했던 기억에 우리를 가두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것들이 가끔 튀어나와 현재를 휘젓고 미신과 정치적 해석이 덧씌워지면서 국민을 분열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완전히 다른 시대와 문명에 살고 있다. 특히, 청년들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세계 최고의 스펙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이나 주변국에 대해서도 열등감이 없다. 이들에게 19458월에 멈춰선 퇴행적인 모습은 뭔가 어색하고 고리타분하게 보일 것이다.

우리는 선진국이 됐고 극일에 성공했다. 경제적으로는 공업화에 성공해 일본·독일과 견주는 제조업 강국이 됐으며, 첨단산업에서도 앞서 나가는 세계 7대 부국이다.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성공시켰으며, 군사적으로는 세계 6대 강국이며, 문화적으로도 선진국이다. 우리는 제2차 대전 후 신생국 중에서 선진국이 된 유일한 나라다. 지금도 경제적 낙후와 정치적 혼란에 빠져 헤매는 제3 세계 나라들과는 차원이 다른 문명국가가 됐다. 우리가 어두웠던 과거의 기억에 매여 있을 이유가 없다.

이제 우리는 선진국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남북분단이나 미래를 보는 관점을 바꾸자. 분단은 더 이상 어두웠던 과거로 우리 국민을 끌고 가는 코드가 돼서는 안 된다. 이제 분단을 우리가 미래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자. 분단이란, 우리가 선진국이 됐지만 아직도 통일이라는 할 일이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통일은 우리에게 더 크고 더 부강하고 더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기회다. 우리에겐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몇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우리가 통일을 이룩하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지역안정과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인류 문명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 다른 민족이나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역사적인 과제다.

 

[문화일보, 202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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