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핵 선제 불사용다시 꺼낸 핵우산 구멍?” 동맹국 동요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전 외교안보수석)

 

바이든 행정부가 오바마 행정부 당시 무산됐던 핵 선제 불() 사용’(No First Use) 정책을 다시 고려하면서 동맹국들이 동요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핵 선제공격은 어차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실질적 차이는 없다는 의견과 그렇다 해도 선제 공격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선택지 자체를 없애면 대북 억지력을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상존한다.

 

고심에 동맹국 우려..영향은

핵 선제 불사용 문제가 다시 떠오른 건 미 정부가 내년 초쯤 발간을 준비 중인 핵 태세 검토 보고서’(NPR)에 이 원칙을 담을지 고심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은 자국이 핵 공격을 받지 않는 이상 핵을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핵 공격을 가한 대상을 보복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핵을 쓴다는 단일 목적’(Sole Purpose)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 등은 최근 이 때문에 동맹국들이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특히 일본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국가들의 우려를 전했지만, 사실 이는 북핵을 코앞에 두고 있는 한국에 더 예민할 수 있는 사안이다.

 

특히 한국 안보 전략의 핵심인 확장억제에 미칠 영향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확장억제는 동맹국이 적대국의 핵 공격 위협을 받을 경우 미국이 모든 전력을 지원해 미 본토와 같은 수준의 억제력을 제공한다는 개념으로, 핵심은 핵 우산이다.

 

"이론적으로는 확장 억제 영향 없어"

이론적으로는 미국이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을 공개적으로 확립하더라도 확장 억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란 의견이 있다. 지금도 핵은 핵 공격을 받았을 경우에 한해 사후 응징 보복용으로만 쓴다는 공감대가 현실적으로 정착돼 있다는 것이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전 외교안보수석)핵 선제 불사용 정책은 대북 억지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핵보유국 간 전략적 안정성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핵 선제 사용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불필요한 핵 긴장 고조를 방지할 수 있다는 취지다.

 

천 이사장은 이어 어차피 핵 선제 타격이 가능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북한의 위협 수준에 대한 인식을 필요 이상으로 높여봤자 우리 안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도 상대가 핵을 사용하지도 않는데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선택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과한 측면이 있다이를 제외하더라도 얼마든지 확장 억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의도적 모호성 유지해야 효과적 억지 가능

하지만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 수준과 속도를 고려했을 때 북핵의 직접적 위협에 놓인 한국으로선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라는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적의 공격 의지를 사전에 꺾는 억지력에 있어선 상대가 무슨 수단을 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핵심 기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의도적인 모호성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확보하는 억지 효과가 있다는 논리다. 실제 지난해 9월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장이 저서격노에서 북한 정권 교체를 위한 작전계획 5027’과 관련, 미국의 북한 공격 방안으로 핵무기 80개의 사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 데 대해 미 정부는 아무 확인도 하지 않았다.

 

찰스 리처드 미 전략사령관은 당시 언론 브리핑에서 한ㆍ미 양국이 북한의 침략 가능성에 대비해 만든 작계 5027에 핵무기 사용이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그 어떤 작전계획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사항을 언급할 수 없다고 답했다. “핵무기 사용은 작계에 없다고 명확하게 밝힌 청와대 입장과 대비되는 모호성 유지였다.

 

남북 전력 비대칭 심각..'선제 불사용' 기류 변화도

전문가들은 또 북한이 지난 2017년 핵 무력 완성을 선포해 이미 남북 간 전력 비대칭성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핵은 핵으로만 억제할 수 있고, 한국은 미국의 핵 우산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핵 선제 불사용 원칙 확립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이 핵 선제 불사용 정책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로비에 나서는 것도 같은 이유다.

 

특히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초기에는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을 다소 명확하게 밝혔지만, 최근 들어선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 18차 노동당 대회 당시 김 위원장은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우리를 겨냥하여 핵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남용하지 않을 것을 다시 확언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열병식까지만 해도 전쟁 억제력이 결코 남용되거나 절대로 선제적으로 쓰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는데, 올해 들어선 선제 불사용관련한 부분이 빠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핵 선제 불사용이 미국의 핵우산에 기능적으로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동맹국들의 불안이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전술핵 개발 의지를 밝힌 북한이 최근 한반도를 사정거리로 한 무기체계를 선보이며 대규모 선제 타격을 준비하는 동향을 보인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맹 우려 불구하고.."의아하다" 반응도

정부는 이와 관련해 공식적으로는 원론적인 입장만 표명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핵 선제 불사용 원칙 검토에 대해 외교부는 한ㆍ미 연합방위태세 및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은 굳건하며, 한ㆍ미는 동맹국으로서 다양한 안보 분야에서 긴밀히 소통 중이라고만 밝혔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의 핵 선제 불사용 정책 검토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내비칠 순 없지만, 어떤 경우에도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에 결핍이 발생해선 안 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확장억제 제공 공약은 지난 5월 한ㆍ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도 맨 첫머리에 명시됐다.

 

다만 정부 안팎에서는 동맹을 향해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한 바이든 행정부가 이처럼 동맹의 우려로 이어질 수 있는 핵정책 전환을 꾀하는 배경을 두고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게 처음도 아니고, 과거에도 결국 동맹국들이 반대해 무산됐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부의 '미완성 숙제' 또 꺼냈나

핵 선제 불사용 정책은 핵 없는 세계를 표방하며 미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일본 히로시마(広島)를 찾았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미국의 핵 우산 아래 있는 동맹국들이 반발했으며, 미 국내적으로도 국방부, 국무부가 나서서 중국ㆍ러시아ㆍ북한 등의 군사활동에 대한 억지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해 현실화하지 않았다. 당시 미국의 동맹국들이 핵무장 등 독자적인 안보노선을 걸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 바이든 행정부가 첫 해에 핵 선제 불사용 정책을 다시 만지작거리는 것은 앞선 민주당 정부에서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숙제를 다시 꺼내든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지난 4월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하면서 관련 논의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비슷한 법안은 트럼프 행정부 때도 발의됐지만, 당시엔 국방부가 나서서 핵 선제 불사용의 위험성을 주제로 한 보고서를 공개하는 등 분위기가 달랐다.

 

미국이 중국과 갈등이 심화하는 시기에 핵 선제 불사용 카드를 검토하는 것도 주목할만 하다. FT는 관련 보도에서 익명의 유럽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이 핵 선제 불사용을 채택할 경우) 중국과 러시아에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은근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지난달 31일 인터넷판 사설에서 미국이 핵 선제 불사용을 선포할 경우 환영할 일이고 전 세계가 찬사를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일보, 2021-11-03]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2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