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급망 재편, 더 뒤처져서는 안 된다

김천식 (통일부 차관)

 

요소수 때문에 온 나라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 사태는 특정 물자의 수급 문제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이 미·중 경쟁과 진영의 재편이라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형성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중국의 어느 관영 매체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가지고 있는 중국의 지위를 분명히 인식해야 하며 이에 대항하면 반드시 해를 입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수입품 중 31.3%에 해당하는 3941개 품목이 특정 국가에 80% 이상을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요소수 사태와 같은 일이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고, 우리나라 경제가 외부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초토화될 수 있는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의 세계화에 익숙해져 이런 위험성을 잊고 있었다. 미국이 주도한 세계화의 핵심은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중국은 장기간 고도성장을 이루었고 세계의 공장이 됐다. 중국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래 패권국가를 꿈꾸며 미국과 경쟁 관계로 올라섰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기 위해 정치·외교·군사·경제적으로 압박하면서 공급망 재구축에 나서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이나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에 대한 접근에서도 미·중 간 극심한 경쟁의 그림자가 보인다.

 

우리는 탈냉전과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북방정책과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했다. 그 핵심 요소는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었고, 남북관계를 개선해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중 협력은 양국이 세계화의 흐름에 동참함으로써 비약적으로 확대됐으나, 남북관계의 변화는 북한의 저항으로 인해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성적표를 받아든 우리는 또다시 세계질서 전환의 광풍 앞에 섰다. 우리는 더는 세계화에 안주할 수 없게 됐다. 우리가 이런 문명사적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초일류 국가로 가거나 삼류 국가로 떨어질 것이며, 국가의 성격과 문명의 선이 달라지게 된다. 이런 근본적 변화를 냉철하게 관찰하고 그 변화를 선용해 국가의 도약을 추구하는 행동을 할 때다.

 

첫째, 세계 공급망 재편을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또한, 주요 물자에 대해서는 수입에만 의존하거나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일이 없도록 재편해야 할 것이다. 국제 경제가 정치에 좌우되는 추세를 고려해 동맹국이나 우호국과의 공급망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4, 5년 전부터 국제 경제에 정치가 개입하고 공급망 재편의 징후가 뚜렷했는데, 우리의 유능한 경제 관료들이 국가 경제의 사활이 걸린 품목들에 대한 공급망 조정에서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주요 자원 확보를 위한 자원외교는 위험성도 있고 장시간이 소요되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10분의 1로 줄어든 자원 확보 외교를 되살려야 한다.

 

둘째, 나라가 나아갈 길을 좋은 방향으로 정하고 이를 확고하게 지켜나가야 한다. 우리는 선진 문명국가를 지향한다. 개인이 존중되고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며 개방적이며 민주적인 나라를 추구한다. 집단주의와 폐쇄적이며 억압적인 문화, 국가 개입이 과잉인 나라는 반드시 전체주의로 변질돼 나라를 가난하게 만들고 인간을 파괴한다. 외교·안보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안보는 물론 가치와 질서, 경제와 과학기술을 둘러싼 국제정치의 흐름에 우리를 바르게 위치시키는 일이다. 경제성장을 추구하며 장래 국력의 핵심 요소인 첨단 과학기술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셋째, 통일을 국가의 미래 좌표로 분명하게 설정해 둘 필요가 있다. 나라든 개인이든 미래 좌표에 따라 미래는 물론 현재의 모습이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국가의 규모와 국력이 배로 커지고 국민이 배 이상으로 잘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세계 유일의 나라다. 이런 꿈이 국제질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전략이 될 것이며 국제 환경의 변화가 그 꿈을 실현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과거 국제 냉전의 중심이었던 유럽에서 냉전체제가 붕괴되자 그 경계선에 있던 독일이 통일됐다. 지금은 동아시아가 국제정치의 중심이며 급변하고 있다. 이 변화가 한반도 질서에 충격을 줄 것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통일의 기회가 될 것이다.

 

[문화일보, 2021-11-18]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11180103341100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