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보 필수조건은 국민 주인의식, 동맹은 보완재에 불과

신각수 (주일대사)

 

미군의 혼란스러운 아프가니스탄 카불 철수가 1975년 사이공 철수의 데자뷔처럼 마무리된 지 100일이 지났다. 세계사에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 철폐, 2008년 세계금융위기 등 세계의 큰 흐름을 바꾼 변곡점들이 있는데, 지난 8월 아프간전 종전도 그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었던 아프간전은 알카에다의 테러 공격을 응징하기 위한 미국의 자위권 발동으로 시작되었다. 미군 등 연합군은 아프간 침공 2개월 만에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켰지만, 파키스탄에서 전열을 재정비한 탈레반의 반격으로 끝없는 전쟁이 됐다.

 

20년간 이어진 아프간 전쟁은 2.3조 달러(브라운대 추산)의 전비와 아프간인 16만명과 서방 8000명의 인명 손실, 220만명의 해외 난민과 약 350만명의 국내 피난민을 발생시켰다. 이 전쟁은 미군 개입의 대실패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전쟁 종결을 서두른 나머지 정세 오판과 철수 계획의 부실로 질서 있는 철수의 실패는 대외적으로 미국의 패배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켰다. CBS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53%가 부정적으로 평가해 바이든 정부의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됐고 202211월 중간선거에도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함께 싸운 유럽·아시아 동맹국과 긴밀한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철군을 강행해 트럼프 시대에 생긴 대미 불신을 되살릴 빌미를 제공했다.

 

미국의 과도한 군사주의의 실패

 

1990년대 이후 탈냉전 시대 유일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이 왜 아프간에서 패배를 자초하였을까? 첫째, 미국은 아프간전의 전략 목표를 불명확하게 설정해 전쟁 종결 지점에 관한 국내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끝없는 전쟁을 벌였다. 전쟁 성격이 초기 대테러전에서 탈레반에 대한 대게릴라전으로 바뀐 것에 적절히 대응하지도 못하였다. 초기 초당파적 접근은 전쟁이 길어져 비판 여론이 일면서 국내 논쟁으로 변질돼 정치 결단을 어렵게 하였고, 당파주의로 인해 의회 견제도 작동하지 않았다.

 

둘째, 미국 외교정책에서 과도한 군사주의의 폐해를 들 수 있다. 미국은 베트남전 패배 후 9·11까지는 대외 군사 개입을 자제하여 미군의 연간 전투 사망은 약 20명이었고 GDP 대비 국방비도 5.6%에서 3.1%로 낮아졌으며 병력도 72만명으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적극 개입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군사적 요소가 정책 결정을 좌우하였다. 실패를 거의 상정하지 않는 군대의 특성상 목표 달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 군사주의는 전쟁의 장기화를 초래할 위험이 컸다.

셋째, 국가 건설과 민주주의 이양의 어려움을 간과하였다. 지리적으로 험난하고 종족적으로 다양하며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경험이 없고 경제적으로 마약 외에 별 소득원이 없는 아프간의 특성을 무시하였다. 미국의 실패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디폴트 정치체제로 보아 민주주의 이양을 과신한 오만도 작용하였다. 민주화가 경제·사회 여건의 성숙과 수십 년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하였다. 세계 어느 곳에나 적용 가능한 보편적 계획과 막대한 물량 공세로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는 가설에 집착하였다. 어느 사회도 외국 군대 주둔을 반기는 곳은 없고 힘으로 민주주의를 건설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대테러전 최대 수혜자는 중국

 

넷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지적과 같이 탈레반 완전 축출과 철수 사이의 대안 모색을 소홀히 한 측면도 있다. 탈레반의 군사적 제압 이후 아프간 정부의 통치 능력 배양을 측면 지원하면서 군사적 희생과 비용이 적은 가벼운 개입태세를 취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프간의 테러 기지화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를 고려하여 아프간 안정을 위한 지역협력 체제를 모색하였더라면 탈레반 봉쇄에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탈레반에 피난처와 지원을 제공한 파키스탄의 행동을 미국이 외교적으로 차단하지 못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9·11테러 이후 시대의 종언을 의미하는 아프간전의 종결은 어떤 국제적 함의를 가질까? 우선 국제질서가 미국 주도 단극 질서가 끝나고 미국이 우월한 지위에 있는 중층적 다극 질서로의 이행을 가속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냉전 종식 후 미국이 누렸던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약화하고 있다. 아프간전은 이라크전과 함께 미국이 냉전 승리로 이룩한 전략적 우위를 과도한 대테러전 개입에 낭비하면서 현재 미국이 처한 다양한 국내 문제를 안게 되는 기회비용을 지불하게 하였다. 미국의 중요 국가 과제에 대한 인력·예산 배분을 왜곡시켜 중국의 부상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여 중국을 대테러전의 최대 수혜자로 만들었다.

 

대테러전은 저부담 원격전으로

 

둘째, 미국 대외 전략의 우선순위가 중국과의 강대국 경쟁에 있음을 확고히 하였다. 트럼프 정부부터 시작된 대중 전략 경쟁이 바이든 정부에 들어 동맹 중시, 다자주의, 가치 외교를 동원한 복합적 경쟁으로 본격화함을 의미한다. 군에서 2500명 규모의 병력 잔류를 주장하였음에도 바이든 정부가 철군을 강행한 것은 국내 여론 고려와 함께 전략 변경을 뜻한다. 쿼드(미국·인도·일본·호주 4개국 회의체) 강화와 미국·호주·영국 동맹(AUKUS) 발족에서 보듯 인도태평양전략의 수행에 전력투구할 것이다. ·중 패권 경쟁의 본격화로 단층대가 확산하면서 격돌이 심화하며, 미국의 군사 전략도 대테러전 위주에서 강대국 경쟁에 맞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셋째, 미국 외교에서 군사력 사용 의존이 상당히 감소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아프간전 종결을 언급하면서 치열한 전쟁에서 치열한 외교로 전환하고, 무력은 국민의 합의와 동맹국과의 협조하에 목표가 명확하고 달성 가능할 때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이라크·아프간 증후군으로 상당 기간 군사주의와 군사 개입의 퇴조가 예상된다.

 

넷째,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독일 국방부 장관이 아프간전은 옳은 것을 위해 일어서고 행하는 국가로서의 우리 정체성과 관련된다고 말한 것처럼 20년 간 서방의 정체성을 구성하였다. 대테러전은 미국의 정부 구조·이민·법집행·여행·금융·신분증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프간 내 테러 활동이 증가하는 가운데 미 국방부는 6~12개월 이내에 해외 테러가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현지 개입보다는 원격전의 저부담 개입형태로 대테러전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아프간전 종전은 국제질서에 큰 변화

 

다섯째, 아프간전의 패배는 전략 경쟁국들에 미국이 쇠락한다는 인식을 심어 오판의 위험을 높였다. 또 아프간 정부 어깨너머로 탈레반과 작년 2월 평화협정을 맺고 탈레반의 합의 위반에 대응하지 않은 것은 미국 동맹 체제의 신뢰도에 부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여섯째, 아프간전은 국가와 국민의 주인의식과 자체 역량 배양이 안보의 필수조건이며, 동맹은 보완재에 불과하다는 냉엄한 교훈을 재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보다 큰 그림에서 볼 때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팬데믹과 기후위기가 새로운 안보 위협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그 해결을 위해서는 국제 협조 체제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미·중 전략 경쟁의 환경에서 이를 어떻게 구축할지가 큰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

 

아프간전의 종결은 지난 20년간의 9·11시대가 마무리됨을 상징한다. 미국은 냉전 당시 소련보다 더 강력한 중국의 도전에 직면하여 국내 재생과 국제 리더십 회복을 서두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을 대형 원양 선박으로 비유하였듯 9·11시대의 종언은 미국의 큰 방향 전환을 의미하며 코로나19 이후 시대의 커다란 변혁과 함께 향후 수십년간 국제 질서에 심대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있는 한국은 안전띠를 단단히 매고 격랑을 헤쳐 나갈 대전략을 모색하여야 한다.

 


[중앙일보, 2021-12-08]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30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