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강제징용 해법 찾기

-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국제학연구소장


2월 18일 독일 뮌헨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5번째 회담을 가졌다이 자리에서 박진 장관은 강제징용 피해자 해법을 찾기 위해 일본이 한국의 노력에 성의 있는 호응을 해줄 것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바야흐로 강제징용 해법 찾기는 9부 능선에 다다른 느낌이다이제부터가 해결의 성패를 좌우할 중대한 고비다.


현 정부는 한일 간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적 아이디어를 거의 모두 공식화했다피해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고3자 변제를 포함한 피해자 보상책을 구체화시키고 있는 단계다전 정권이 이 문제에 대해 방치·외면·악화로 일관했던 것에 비해 적극적이다일본의 상응 조치 표명 이전에라도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해법과 구상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선제적이다우리가 먼저 할 일을 할 테니 일본도 호응하라고 하는 점에서 주도적이다일본이 아니라 한국이 한일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공은 일본에 넘어갔다일본 우파들은 한국이 국제법 위반 상태를 만든 것이니 한국이 책임질 일이고 일본은 할 일이 없다고 주장한다하지만 한국 정부가 관계 개선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역사적 짐을 덜어주거나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한국 측만의 노력으로는 이 문제를 넘어설 수 없다일본이 진정으로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야당 측도 '그 정도라면 우리도 반대만 할 수 없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어야 한다그러지 않을 경우 국내에서 반대운동이 더욱 거세질 것이고설사 어설픈 합의를 하더라도 '판 뒤집기'를 시도할 것이다현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정체되거나 악화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일본 일각에서는 구상권만 포기하면 일본 기업 참여의 길을 열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하지만 제3자가 변제를 하는데 구상권조차 포기하라는 것은 채무를 면책해 달라는 요구와 마찬가지다꿩 먹고 알 먹자는 생각이다한국의 체면을 일부러 깎아내릴 생각이 아니라면 재고해야 마땅하다한국이 구상권을 보유한다고 해도 일본이 향후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나 여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판결에 적시된 기업들 대신에 게이단렌 등이 일본 기업들의 성금을 모아 기부하면 어떠냐는 아이디어도 들린다게이단렌의 참여는 긍정적이지만두 기업을 대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한국에 돈이 없거나 모자라서 일본 기업에 돈을 내라는 게 아니다판결에 적시된 기업이 참여해야 피해자들을 설득할 수 있고 반대의 확산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정치적 결단을 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점을 꼼꼼히 챙겨볼 필요가 있다첫째앞으로 한국을 전략적 협력 파트너로 계속 끌어안을 것인가둘째현안 해결에 실패하고 현금화가 진행된다면 지금보다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셋째한일 간 갈등이 불거지면 어느 국가와 어느 세력이 이득을 보는가를 대국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이제까지 문제 해결을 위해 최대의 성의를 보인 이상 지나치게 일찍 끝장을 내겠다고 서두를 필요는 없다해결의 시한을 정해 두고 초조하게 움직일 이유도 없다외교의 시간은 변경이 가능하다하지만 국내 정치에서 역풍이 불고 질곡에 빠지면 상당한 정치적 리스크를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정상회담은 박수 칠 수 있을 때 해도 늦지 않는다만약 일본이 끝내 상응 조치의 실행을 거부한다면 플랜B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일본이 상응 조치 마련을 위한 정치적 결단을 서둘러야 할 때고한국은 일본의 협력을 요구하면서 지나치게 서두르지 않는 정치적 선택을 할 때다.


 

[매일경제, 202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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