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방적 국제주의'로서 한·미·일 협력

-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국제학연구소장)


한일정상회담은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새로운 지역 협력과 미래 파트너십의 지평을 열어 놓았다. 이에 비판하는 사람들 생각의 저변에는 민족주의적 감성 추구와 과거사 중심주의가 놓여 있다.


한국의 과거사를 민족주의적 감성으로만 읽는 방식은 넘어설 때가 되었다. 우리 역사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국제정치의 현실적 이해에도 부합하도록 읽어내야 한다. 삼전도의 굴욕은 우리 역사에 치욕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청나라가 들어선 이후에도 유교주의적 대의명분을 앞세워 멸망한 명나라에 대한 충성을 앞세운 비현실적 국제정치 인식이 놓여 있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서구 제국들이 경쟁적으로 아시아로 팽창할 때, 우리가 일본에 앞서 자강을 위한 개혁 개방과 부국강병에 나섰다면 을사늑약과 같은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폐쇄적 민족주의의 추구는 결과적으로 나라를 구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하면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세계에서 10위권을 넘나드는 강국이 된 지금, 다른 나라에 대한 굴욕과 조공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을뿐더러 국력에도 국격에도 맞지 않는다.


일본과의 협력을 무조건 비판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우리가 협력하자는 대상은 한국을 식민지로 몰아넣은 제국주의 일본이 아니다. 지금의 일본을 제국주의 일본의 연장선상에서만 바라보는 시각은 비현실적이다. 식민지와 군국주의를 추구하는 일본이라면 미국이 먼저 적대의 대상으로 삼았을 것이다. 현재의 일본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개방적 국가이자 자유, 인권, 법치를 중시하는 가치 공유국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수호하려는 동지국(同志國)이다. 한국이 지금의 일본과 협력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이다.


힘을 사용하여 국제질서의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국가들은 미국과 일본이 아니라 북한, 중국, 러시아다. 핵과 미사일로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 국제법을 무시하고 비핵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만과 남중국해를 자국의 영향력에 두려는 중국이야말로 공세적 현상변경세력이다. 이들 국가는 1인 지배의 권위주의와 서열적 국제관계를 추구하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권위주의적 힘의 집중이 어떤 폐해를 가져오는지 독재를 경험해 본 우리는 안다. 민주와 자유를 추구하는 열정이 남아 있다면, 권위주의적 현상변경국가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일 줄 알아야 마땅하다.


북한은 여타 국력에서 우리에게 졌다는 것을 알고 군사력 집중으로 막판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배경으로 한반도에서 현상을 변경하려는 시도에 맞서려면 미국, 일본 등 안보협력 국가들과 함께 힘에 의한 평화로 안정을 확보하고, 비핵화에 기반한 평화를 추구하는 게 현실주의적 방책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한·미·일 협력은 우리의 안전과 안정을 위한 방패다.


미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도 우리는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질서의 편에 서야 한다. 자유와 민주를 존중하고 국민의 의사를 받아들이는 국가들과의 협력이 가치에 부합하는 선택이다. 한국 기업들이 성장한 개방적 경제통상질서의 편에 서야 지속가능한 발전이 담보된다. 첨단 기술 협력과 미래 사회의 비전을 공유하는 국가들과 힘을 합쳐야 다음 세대들의 삶도 안정적이다. 미국, 일본, 유럽의 선진국들과 어깨를 맞대고 협력해야 하는 까닭이다.


과거의 잘못은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현재의 국제정세를 오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래의 선택을 그르치는 것은 피해야 한다. 20세기의 논리로 21세기를 이해하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개방적 국제주의에 기반한 한·미·일 협력이야말로 한국의 전략적 선택이다.



[매일경제, 20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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