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징용 해법 완결 아닌 진행형, 국내 지지 확보가 가장 중요

- 신각수 (前 주일대사)


10년 넘게 얼어붙었던 한·일 관계에 춘풍이 불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가 지난 6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해법을 발표한 데 이어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16·17일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하게 돼 양국 관계의 해빙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해법에 대한 지지와 반발이 엇갈리는 가운데 일본의 상응조치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중앙SUNDAY가 지난 8일 일본 전문가인 신각수 전 주일본대사를 만나 이번 해법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정부의 발표가 너무 성급하지 않았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결정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A. 강제징용 피해자들이나 일반 국민의 기대 수준에 미흡한 건 사실입니다. 지난 1년간 한·일 교섭에서 전술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만큼 얻지 못한 것에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걸 다 얻기 위해서 시간을 쓰는 것보다는 좀 모자라지만 앞으로 그것을 채워 나갈 것을 상정해서 일단 한·일 관계 정상화의 시계를 빨리 돌려야겠다는 전략적인 결단을 했다고 봅니다.”


한·일 경제교류도 활성화, 윈윈 기회 창출


Q. 피해자와 시민단체, 야당의 반발이 거셉니다. 윤 대통령은 정면돌파가 가능할까요.

A. 이번에 발표한 내용은 완결형이 아닙니다. 진행형이고 앞으로 더 채워져야 할 겁니다. 국내에서 지지를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피해자나 피해자 지원단체가 다 따라오리라고는 보지 않지만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그분들이 바라는 것을 최대한 담으려고 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대통령이 담화 등을 통해 ‘여러분의 희생 덕분에 대한민국이 이렇게 발전했다’며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도 검토해 봤으면 합니다.”


Q. 발표안은 시작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A. 한·일 정상회담 등에서 우리 정부 발표를 뒷받침하는 일본의 호응이 구체화되기를 바랍니다.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배상 문제도 해결됐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고려해 현실적으로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기대수준을 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올바른 접근 방법이라고 봅니다. 아무래도 제일 아쉬운 부분은 피해자에 대한 사과입니다. 일본 기업들은 과거에 3차례 일본최고재판소의 화해 권고에 따라서 중국인의 강제징용에 대해서는 사과를 했습니다. 사죄에 인색할 필요는 없거든요. 그 정도도 못 한다고 한다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제3자 대위변제 해법은 우리 대법원 판결과는 상치되는 것 아닌가요.

A. 대법원 판결과는 차이가 있는데 그래서 국회 특별법 입법으로 푸는 게 옳다고 봅니다.”


Q. 대법원 판결 승소자 15명이 이번 발표안처럼 배상금을 모두 수령할지 등 난제가 수두룩합니다.

A. 피해자들 가운데는 대위변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이들이 또다시 소를 제기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구상권 문제도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여당은 야당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해야 합니다. 여야는 당파 이해를 떠나 무엇이 국익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초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이 해결책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Q. 일본은 여전히 미온적인 대응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A. 일본의 일부 우파는 ‘한국은 믿을 수 없다.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며 ‘한국에 호응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윤 정부가 국내정치적인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대일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일본 정부도 호응해서 한·일 관계가 미래로 나가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고 보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일본 정부가 도울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을 채우기 위해 우리가 외교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Q. 미래기금에 피고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이 참여하는 게 중요할 텐데요.

A.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봅니다. 이들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는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먼저 자신들의 행위가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을 절대 피하고 싶어 합니다. 두 번째는 미래기금에 참여했을 때 그게 과연 끝이냐, 최종적인 것이냐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외교채널이나 수단을 통해서 해당 기업들의 참여를 최대한 독려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일본 피고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할뿐더러 그 기업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일본제철이나 미쓰비시중공업은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과거사 문제로 멍에를 계속 지고 가는 것보다 이번 기회에 해결하고 벗어나는 게 더 좋은 선택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Q. 16·17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윤석열-기시다 선언’이 나올 수 있을까요.

A.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1998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나오기에는 시간적으로 너무 촉박한 것 같습니다. 그런 게 발표되려면 준비하는 데 최소 두세 달은 걸립니다. 너무 거기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한·일 양자관계에만 우리를 속박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동아시아를 보고 또 전 지구를 보면 한·일 간의 협력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그것을 못 하는 것에 대한 기회비용을 우리가 지난 10년간 얼마나 지불했는지를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모두가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대중 대통령처럼 야당도 한·일 관계를 잘 관리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 한·일 관계가 나빠짐으로 해서 기대효과를 못 얻는 기회비용, 이걸 전체적으로 봐야 합니다. 여야가 이런 일에 서로 경쟁했으면 좋겠습니다.”


Q. 한·일 관계 개선이 미국에 던지는 메시지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에 따른 한국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소리를 낼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거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A. 그런 분석은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데 있어서 한·일 관계 복원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미국은 동아시아 정책에서 도쿄에 귀를 가장 많이 열어 두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한·일 간에 협력이 잘되면 워싱턴을 움직일 때 도쿄라는 카드를 우리가 쓸 수가 있는 거죠. 그런 차원에서 윤 대통령도 4월 방미를 앞두고 미국이 간절히 원하는 한·일 관계 복원의 정지작업을 하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겠죠.”


한·일 관계 복원, 한·미 동맹 강화에도 중요


Q. 한·일, 한·미 정상회담과 G7 회담 등 중요한 외교무대가 연이어 펼쳐집니다. 윤 대통령과 우리 정부는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A. 한·일 간에는 뇌관이 많습니다. 곳곳이 지뢰밭입니다. 지뢰에 닿지 않도록 사전 조치를 좀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장에 사도광산 유네스코 유산 등록,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이 오염수를 방출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 국민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모니터링 메커니즘을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일 간의 감정싸움을 없애는 조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도광산과 관련해서는 군함도 문제를 분명히 이야기해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태평양전쟁에 동원됐다 숨진 희생자들의 유골 수습과 봉헌 문제도 정부가 좀 신경을 써야 합니다.”


Q. 한·일 경제교류 활성화도 기대됩니다.

A. 아베 정부의 2019년 7월 수출규제 이전에는 한·일 관계가 조금 나빠져도 양국 기업들의 필요에 의해 자체적으로 협력을 잘했습니다. 정경분리가 방어막으로 잘 작동돼 왔습니다. 그걸 아베 총리가 깬 겁니다. 이번에 분위기가 개선되면 서로 윈윈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 봅니다.”


Q. 한·일 간 신뢰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요.

A. 한·일 관계가 11년째 나쁘다 보니까 신뢰자산이 바닥이 났습니다. 신뢰회복을 위한 조치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협력의 분자는 늘리고 갈등의 분모는 줄여 나가야 합니다. 과거사와 관련한 갈등을 줄이고 다른 협력 분야는 빠른 템포로 실행에 착수해서 구체적인 성과를 얻게 된다면 그것이 한·일 관계를 건강하게 하는 첩경인 것 같습니다. 착실하게 가능한 것부터 실현해서 양국 국민들이 이웃에 일본이 있어서 도움이 된다, 한국이 있어서 도움이 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 정부가 제시한 해법은 끝이 열려 있는 일종의 ‘오픈 엔디드 솔루션’입니다. 우리가 내놓을 건 다 담았고 이제 일본이 호응할 게 남아 있습니다. 탱고를 추자는 데는 한·일이 이해관계가 같습니다. 일본이 템포를 좀 맞춰 줬으면, 스텝을 좀 맞춰 줬으면 좋겠습니다. 윤 대통령이 아무튼 어렵게 결단을 했으니까 양국에서 적극적인 호응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중앙SUNDAY, 2023-03-1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46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