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급망 조정 실패 땐 제2 구한말 부른다 

  • - 이근 (서울대 교수, 前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요즘 미국과 유럽에 의해 주도되는 중국과의 공급망 디커플링(탈동조화)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연결을 끊는다는 의미의 디커플링은 사실 중국이 먼저 시작한 조치들이다. 우선, 중국은 오래전부터 안보상의 이유로 구글, 페이스북 같은 미국의 인터넷 플랫폼을 디커플링하고 있다. 대신 알리바바나 바이두, 텐센트 같은 중국 기업이 인터넷 플랫폼을 장악했다.
 
2016년 우리가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중국은 한한령이라는 한류 디커플링과 관광객 디커플링도 시작했다. 2020년 호주가 중국에서의 코로나19 발생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중국은 호주산 쇠고기 수입 규제 및 호주산 석탄 수입 금지, 호주산 와인 및 바닷가재 고관세 부과 조치 등 무역의 부분적 디커플링을 단행했다. 2010년 일본과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중국은 희토류 수출과 일본 관광에 대한 디커플링을 한 바 있다.
 
이와 같은 디커플링 사례가 보여주는 공통점은, 중국이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안보적 또는 정치적인 이유를 들어 외국과의 경제적 디커플링을 무기화해 왔다는 것이다. 즉,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 관계를 끊었다 붙였다 하면서 외국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안보적 관심이 본격 시작된 것은 중국의 사례보다 훨씬 이전인 1970년대의 오일쇼크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동의 석유 수출국들이 결성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서방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보복으로 1973년 석유 감산 및 수출 제한 조치를 단행하면서 세계 경제가 침체기로 들어섰다.(1차 오일쇼크)
 
1979년에는 이란혁명으로 인해 또 한 번의 오일쇼크가 발생했다. 세계 경제의 핵심 에너지원인 석유의 가격은 1973∼1980년 사이 약 10배 상승했고, 이를 계기로 1960년대부터 시작된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종언(終焉)을 고한다. 요즘 유행어가 된 ‘경제안보’라는 신조어가 이때 처음 등장했고, 자본주의 선진국들은 국제 연대 및 에너지 공급망 조정과 같은 당시의 디커플링과 위험 회피 조치를 한 바 있다.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우려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러시아 및 중국과 같은 강대국들이 주요 공급망을 무기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다시 한 번 경제안보라는 이름으로 재점화됐다. 2020년에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의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리스크를 각인시켰는데, 2022년 말 3연임에 성공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대만에 대한 무력통일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자유주의 선진국들은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전략물자 공급망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에 들어갔다.
 
21세기 세계 경제의 전략물자는 반도체와 배터리 및 그 제조에 필요한 희토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 변환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변환은 반도체와 배터리, 희토류를 과거 석유에 버금가는 핵심 전략물자의 반열에 올려놨다. 공교롭게도 이 전략물자의 공급망은 한국과 대만이 제조하는 고성능 반도체 일부를 제외하고는 중국 의존적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만일 대만 통일 등 현상 변경을 원하는 초강대국 중국이 이 공급망을 무기화한다면 자유주의 선진국들은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공급망을 정치·안보 무기로 사용한 중국의 과거 사례를 볼 때,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반도체·배터리·희토류 공급망과의 일정 정도 디커플링은 리스크 회피 차원에서 당연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제로 코로나 정책처럼 14억 인구를 과감히 통제할 수 있는 현 중국 정부에 대해서는 방심할 수가 없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우리나라가 자유주의 선진국과 함께 전략물자의 공급망 조정에 참여하는 것은 경제안보라는 측면에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당장은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의 매력 때문에 망설이게 되겠지만, 국가 미래를 위해서는 인내를 가지고 시장 다변화라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중국의 공급망 안에서 미래를 보장받겠다는 결정을 하게 된다면, 한국은 결국 중국의 세력권 안으로 편입돼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제2의 구한말을 맞을 수도 있다.



[문화일보, 202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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