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권의 날, 변화하는 지구촌과 세계인권선언문

- 서창록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UN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 부의장, (사)휴먼아시아 대표) 


세계인권선언문은 1948년에 채택되었고, 올해 75주년을 맞이했다.


세계인권선언문은 인권의 보편성을 주장한 최초의 문건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엔의 설립과 함께 서구의 이념에 기반한 문서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국제인권법의 기초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엔의 설립 직후에 형성된 미국과 소련의 대립은 인권에서도 이어졌다.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자유권을, 공산 진영에서는 사회권을 더 우선시했다. 또한, 90년대 문화적 상대주의 논리로 많은 독재국가들이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인권의 보편성은 세계인권선언과 함께 살아남았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도 굳건히 인류 공동으로 합의하는 문서가 존재함은 행운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보편성과 불가분성의 원칙이다. 세계인권선언문은 차별 없이 모든 인간에게 적용된다는 원칙과 자유권과 사회권, 연대권까지 두루 고르게 언급하며 인권 간에 차등이 없고 서로 연계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덕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에서도, 빈부격차로 불만이 가득했던 개발도상국에서도 지지받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에게 형제의 정신으로 대하여야 한다.


기후위기와 디지털 기술의 위협 등 현재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세계인권선언문을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선언문 제1조의 두 문장은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와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났으므로 서로를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이다. 두 번째 문장은 같은 공동체에 사는 사람들과의 우애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제29조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해 의무를 진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인권은 개인의 권리로 인식되지만, 공동체에 대한 옳은 행위를 말하기도 한다.


현재의 공동체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와는 달리 전 지구로 봐야 할 것이다. 한쪽 끝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른 끝 쪽까지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의 위기와 디지털 혁명의 인권적 위협은 전 지구적이고 지구촌 모든 이들의 공동의 노력을 요구한다. 75주년을 맞아 세계인권선언문을 다시 읽고, 그전에 간과했던 형제애,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상기해 보자. 작금의 심각한 문제들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세계인권선언문을 올바로 이해하고 연대성과 공동체의 책임을 균형 있게 이해한다면 미래에도 지구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중요한 문건으로 존재할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2023-12-09] 

https://m.blog.naver.com/nhrck/223287023636?referrerCo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