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트럼프 재선해도 한·미·일 관계 급속한 변화 불가능”

-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前 외교안보수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 달이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쏘아대며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 “대한민국”이란 호칭을 사용해 우리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김정은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명박(李明博) 정부의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千英宇·72)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북한이 3대에 걸쳐 일관되게 견지해온 ‘하나의 조선’에 입각한 통일을 포기하고 2국 체제를 들고 나온 것은 1974년 동독이 채택했던 노선과 똑같다”며 “서독의 흡수통일을 두려워했던 동독은 2국 체제를 들고 나온 지 15년 만에 흡수통일됐다”고 말했다.

지난 2월 5일 서울 종로에 있는 한반도미래포럼 사무실에서 만난 천영우 이사장은 1977년 외교부에 들어가 2013년 퇴직할 때까지 36년간 총성 없는 전장인 외교 무대에서 활약한 정통 외교관 출신이다. 노무현(盧武鉉) 정부에서 2년 이상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아 비핵화 협상 전면에 나섰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후반기 2년 반 동안 외교안보수석으로 국방·통일 분야에서 대통령을 보좌했다.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 천 수석은 북한의 모든 장사정포 진지를 5분 이내에 파괴할 수 있는 전술지대지미사일(KTSSM)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정도로 무기체계에 대한 이해도 수준급이다.

천영우 이사장은 윤석열(尹錫悅)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2022년 4월 대한민국 외교·안보 정책의 길라잡이가 될 책 《대통령의 외교·안보 어젠다-한반도의 운명 바꿀 5대 과제》(박영사)를 펴냈다. 기자가 구매한 책을 천 이사장에게 건네자 “외교의 수장과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께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평소 생각을 정리했는데, 기자와 학생들도 많이 본다고 들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사인을 해주었다.



“연평도 포격 때보다 상황 안정적”


  — 이명박 정부 때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이 있었습니다. 당시와 현재를 비교해 안보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요.

   “그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안정적이죠. 2010년은 김정일이 반신불수 상태로 후계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시점이라 사소한 충돌에도 과잉 반응해야 할 국내 정치적 수요가 있을 때였습니다. 남한에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면 짓밟힐 것이란 강박관념이 있었을 때이고, 지금은 경제난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김정은 체제는 안정돼 있습니다. 내적으로 김정은의 권력에 도전이 될 만한 요소는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도발하거나, 한미연합훈련에 과잉 대응해 도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봅니다.”

   — 그렇다고 북한의 도발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요?

   “북한의 국지도발 가능성을 과소평가할 순 없죠. 하지만 어설픈 도발로 연평도 포격 때 우리의 K9 자주포에 의해 6·25 전쟁 이후 처음으로 북한 영토를 포격당한 악몽(惡夢)이 재현된다면, 핵을 가진 김정은의 권위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겁니다.”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와 통일 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선언했다. 대한민국이란 정식 국호를 사용하면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인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한 데 이어,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대남기구의 폐지를 결정하고, 북한의 영토 범위를 헌법에 명시하기 위한 개헌 의지도 밝혔다.


북이 ‘대한민국’이란 호칭 사용한 이유

   — 북이 ‘대한민국’이란 호칭을 사용해 우리 국민들을 어리둥절케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남북 체제 경쟁에서 이제는 이길 자신이 없다는 고백이고요, 또 북한이 3대째 고수해온 ‘하나의 조선’ 노선으로 북한 주도하의 적화통일을 하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 핵무기 고도화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김정은이 오히려 적화통일에 자신감을 잃고 있다는 게 역설적입니다.

   “김정은이 적화통일이든, 평화통일이든 통일은 ‘김정은 체제의 몰락’이란 이치를 깨달은 것 같아요. 남북 간 체제 경쟁에 대한 자신감 상실과 흡수통일에 대한 실존적 공포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북이 서로 주권국으로 인정하면 통일의 명분이 없어지고, 수단과 방법도 대폭 제약되기 때문에 흡수통일을 막을 정치적 방패가 될 수 있다고 본 거죠. 김정은 연설의 행간을 보면 ‘우리는 이제 적화통일이든 평화통일이든 다 포기할 테니, 당신들도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통일을 포기하라’는 속내가 읽힙니다.”

   — 김정은은 자유분방한 한국의 대중문화도 체제를 위협하는 ‘악성 바이러스’로 인식하고 있는 듯합니다. 최근엔 ‘반동사상문화배격법’까지 제정해 한류의 유입을 중형(重刑)으로 다스리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어떤 식의 통일이든 ‘한류 바이러스’의 수문이 열리면, 그 걷잡을 수 없는 물줄기가 종국엔 김정은 체제를 삼킬 ‘악마’로 보는 것이지요. 북한 입장에서 적화통일이 아무리 중요해도 정권의 존속보다 우선할 수는 없고, 생존을 희생하면서 추구할 만한 가치는 없다고 보는 겁니다. 북한은 불안할수록 허세를 부리고 언행이 거칠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직은 핵 선제공격으로 장렬한 집단 자살을 시도하기보다 변신을 통한 생존에 희망을 거는 것 같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통일에 대비한 조약문서


   — 김정은의 남북한 2국 체제 전환 선언은 1991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전면 부정하고 두 개의 주권국 체제로 전환한다는 뜻 아닌가요.

   “대한민국에 흡수통일될 ‘위험성’만 높아진다면 통일을 아예 포기하고 2국 체제로 가는 것이 북한엔 실리적 선택이란 겁니다. 그러나 2국 체제로 가는 것은 북한엔 실리적 선택이지만 통일의 결정적 기회가 오더라도 이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미래엔 재앙(災殃)입니다. ‘남북기본합의서’에는 남북관계를 국가 관계가 아니라고 못 박고 있고, 남북이 상대방을 무제한의 자치권을 보유한 지방정부로 간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이 자치 능력을 상실할 경우, 대한민국이 중앙정부 자격으로 북한의 자치권을 회수하고 직할 통치를 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합니다.”

   — 북한이 지금껏 남북 간 모든 합의를 깨면서도 남북기본합의서만은 깨지 않고 지켜온 게 신기합니다.

   “역으로 북한도 남한을 적화통일하는 데 필요한 문서이기 때문입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남북한 총리 회담을 여러 차례 거쳐 만든 조약 형식의 가장 권위 있는 법적 문서죠.”

   — 1991년 9월 남북한은 이미 유엔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별개의 주권국가로 인정받지 않았나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면서 국제법적 혼란이 생긴 것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유엔 가입과 별개로 남북 상호 간에는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로 한 겁니다. 이는 우리가 독자적으로 북한 안정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때, 제3국의 시비를 차단하고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적 근거입니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한다면, 국제법상 유엔 안보리의 승인 없이는 자위권의 범위에서 벗어난 군사 개입이 불가능해지고, 대량 학살 중단과 인도적 참사 수습을 위해 우리가 개입하려고 해도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에 막혀 손발이 묶일 수 있습니다.”

“서독, 동독의 2국 체제 주장 거부”

   — 북한이 제멋대로 대한민국을 주권국가로 인정하겠다고 하는데, 이걸 막을 방법은 없을까요.

   “북한이 하겠다면 막을 방법은 없지요. 우리가 인정하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수 없고,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헌법 제3조의 영토 조항을 개정하는 우(愚)를 범해서도 안 됩니다. 통일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식어가고 있다고 해서 통일의 기회가 도둑처럼 찾아올 때, 이를 놓칠 결정을 졸속으로 하면 안 됩니다. 북한 정권의 폭압 아래 신음하는 2500만 명의 동족에게 인간다운 삶을 누릴 희망을 박탈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이 될 겁니다.”

   천영우 이사장은 “좌우 양 진영에서 차제에 통일을 포기하고 2국 체제로 가자는 주장이 분출하더라도 정부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면서 “서독이 동독의 집요한 국가 승인과 2국 체제 전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한 이유 속에 그 해답이 있다”고 했다.

   — 동독이 서독에 2국 체제를 요구한 전례가 있군요.

   “1974년 동독이 서독의 흡수통일을 막기 위해 통일을 포기하고 두 국가 시스템으로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서독은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받아주지 않았어요. 서독이 하나의 독일 원칙으로 내세운 게 ‘할슈타인 원칙(서독이 동독과 외교관계를 맺는 국가와는 외교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1955년 발표한 외교상 원칙)’이었다면, 동독이 통일을 회피하기 위해 내놓은 방책이 2국 체제였습니다. 김정은의 북한은 1974년 동독이 했던 짓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동독은 2국 체제를 주장한 지 15년 만에 서독에 흡수통일됐습니다. 북한이 동독처럼 15년 후 남한에 흡수통일될지는 알 수 없지만, 역사가 가는 방향에서 북한은 지금 동독의 1974년 상황에 처해 있다고 봅니다.”

‘시시포스의 신화’가 된 북핵

   — 우리의 대북 정책은 지금껏 계속 실패의 연속입니다. 문제는 무엇일까요.

   “대북 정책의 가장 큰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입니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핵무장 의지가 초강대국 미국을 위시한 핵심 이해 당사국들의 집단적 비핵화 의지를 압도했습니다. 국제사회가 힘을 모으지 못한 거지요. 결국 ‘시시포스의 신화’처럼 시간이 갈수록 바위는 더 무거워져, 제자리에 올려놓는 것조차 불가능해졌습니다.”

   —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윤석열 정부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대북 제재를 강화하고,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정치·경제적 비용을 높이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북한이 우리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자신들이 핵을 개발하고 미사일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돈줄’ 역할만 해달라는 것이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대화의 물꼬를 튼답시고 남북이 만나 납북자 문제와 국군포로 문제 등 인도적 문제를 꺼내면 북한이 관심을 가질까요?”

   —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엔 당시 주오스트리아 대사관에서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북핵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특히 1999년 대북경수로사업기획단의 국제부장으로 일하시면서 1995년 3월 발족한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실제적인 업무를 담당하셨지요? 북한 비핵화가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 체험했을 것 같습니다.

   “1999년부터 2년간 평양, 신포(북청)를 비롯해 경수로가 건설되는 함경남도 금호지구를 들락거렸습니다. 그러다 북한이 파키스탄의 도움으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몰래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서 부시 행정부 들어서 사업이 중단됐습니다. 북한이 경수로와 핵을 동시에 가지려 욕심을 부리다 2002년 미국이 제네바 합의를 파기(2차 북핵 위기)하면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지요.”

“북, 정권 사활 걸고 핵 개발”


   — 북한은 핵 개발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경수로를 건설해주는 대가로 비핵화, 사찰을 애초부터 수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북한의 전력 부족은 경제에 있어 사활이 걸린 문제였어요. 금호지구에 건설하려던 경수로가 200만 킬로와트 용량인데, 당시 북한 전력 총량은 500만 킬로와트가 채 안 됐어요. 24년 전이나 지금이나 북한 에너지 사정은 똑같아요. 그때 경수로 건설을 성공적으로 했더라면 북한은 경수로에서 전력의 40%를 충당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인민군대 동원해 2012년 4월 완공한 자강도의 희천발전소도 경수로 용량의 10분의 1 수준밖에 안 될 겁니다.”

   — 2007년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시절엔 북한 김계관 수석대표와의 담판으로 2·13 합의(영변의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다시 동결하고 재가동이 어렵게 ‘동결화’)에 성공하셨는데, 결국 북한의 비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사기극’이 드러나면서 2009년 4월 6자회담 체제도 종말을 고하고 말았습니다.

   “6자회담에서도 중국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경제관계를 단절하겠다든지, 미국이 하자는 대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에 동참했더라면 북한은 경제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겁니다.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엔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북한 체제의 안정을 해쳐가면서 할 생각이 없다고 했어요. 북한이 밥을 굶어가면서라도 핵을 만들겠다고 나오니 그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던 거죠.”

   — 그런 면에서 중국은 ‘방관자’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엔 중국도 북한이 핵을 갖는 것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러시아도 그렇고요. 핵 보유국들은 아무리 우방국이라도 핵을 갖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가 핵을 가진다면 미국이 제재하지는 않겠지만 좋아할 리는 없지요. 그래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핵을 보유하려고 할 때,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면서 저지한 것 아닙니까. 우리는 그 정도의 압박에 무너졌지만, 북한은 정권의 사활을 걸고 덤비니 손쓸 도리가 없었던 겁니다.”

사거리와 탄두 중량 늘리는 데 성공

천 이사장은 “납세자의 입장에서 우리 군이 획득하려고 신경 쓰는 무기 시스템 가운데 긴요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고, 기자는 “무엇보다 병사들 월급을 과다하게 책정해 군사력 건설 비용이 전력운용비로 유출되는 것이 큰 손실”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해군이 원자력잠수함을 건조하려고 하는 것이 큰 전력(戰力) 낭비라 생각한다”고 했다.

천영우 이사장은 심윤조(沈允肇) 전 의원, 박진(朴振) 전 외교부 장관 등 대부분의 해군 출신 외교관들이 통역 장교의 길을 걸었던 것과 달리, 1970년 해군 수병(水兵)으로 입대해 36개월 동안 당시 최신예 군함인 ‘93함’에서 레이더병으로 복무했다.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따라 중국과의 갈등이 정점에 달했을 때, 레이더 운용에 대한 기본 원리를 꿰뚫고 있었던 천영우 이사장은 중국의 국책 싱크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 과학자들을 상대로 레이더파와 지구 곡면 원리를 설명하며 사드 레이더파가 중국을 관측할 수 없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고 했다.

   — 해군 출신 외교안보수석으로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을 건의하고 관철했습니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우리 선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작전을 대통령께 건의했는데, 작전의 성공으로 이후 해적들이 한국 선박을 납치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주 큰 보람입니다.”

   —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중에 톰 도닐론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의 직접 담판을 통해 ‘한미 미사일 지침’ 2차 개정에서 한국 미사일 능력을 획기적으로 증강했지요?

   “2003년부터 2년간 유엔 미사일 패널의 위원으로 참가하면서 세계적 미사일 전문가들과 토론하면서 미사일을 집중적으로 공부한 것이 결정적으로 도움이 됐지요. 당시 언론에서는 사거리가 300km에서 800km로 늘어난 것에 초점을 맞췄는데, 사실은 탄두 중량을 늘리려는 게 우리의 목표였죠.”

“전술핵 필요 없어져”


   — 사거리를 줄이는 대신 탄두 중량을 늘려 파괴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군요.

   “사실, 우리의 목표는 미사일 지침 폐지인데, 미국이 미사일 지침 고수를 주장하니까 타협책으로 사거리를 800km로 미국에 맞춰준 대신, 탄두 중량을 500kg으로 했지요. 사거리 증가에 따라 탄두 중량을 줄여야 한다는 트레이드 오프(Trade-off) 방식을 적용했어요. 사실 북한의 모든 미사일 기지는 사거리 500km면 충분합니다. 만약 우리가 사거리를 300km에 맞추면 탄두 중량을 2톤까지 올릴 수 있는 겁니다.”

   — 현무4는 북한 김정은의 지하 벙커까지 뚫는 전술핵급 ‘괴물 미사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전엔 미사일의 정확도가 떨어져 전술핵이 필요했던 겁니다. 예컨대 지하 고강도 목표물을 파괴하는데, 원형 공산 오차(CEP·Circular Error Probability)가 100m라면, 목표점 중심 반경 100m 내에 50발이, 그 외곽 지역에 나머지 50발이 떨어진다는 얘기죠. CEP가 200m였다면 재래식 무기로는 곤란하고 전술핵을 써서 파괴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재래식 미사일의 정확도와 파괴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면서 전술핵의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 미사일 지침에선 순항미사일 때문에 덩달아 탑재 중량이 묶여버린 무인기(UAV)의 탑재 중량도 협상했다면서요?

   “미사일 지침 개정 협상 당시 무인기(UAV) 카테고리를 신설해 한국이 탑재 중량 2.5톤 규모의 대형 무인공격기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합의했습니다. 미국 정부와 협의해 탑재 중량을 기존 500kg에서 2.5톤으로 늘렸습니다. RQ-4 글로벌 호크와 같은 대형 UAV 도입이나 개발에 걸림돌을 제거한 겁니다. 이때 협상 덕분에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인기가 맹활약한 것처럼, 한반도 안정화 작전이라든지 여러 가지 군사적으로 중요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 요즘 북한이 탄도미사일 고도화를 계속해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의 미사일 기술 발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액체연료에서 고체연료로 바꿔가는 움직임입니다. 북한 미사일을 탐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거죠. 지금은 발사장 거리에 따라 20~30분 이내에 쏠 수 있어요. 북한은 ICBM을 발사할 수 있는 TEL(이동식발사대)을 얼마 전까지 사용했습니다만, 우리에게 치명적으로 위협적인 건 화물열차 플랫폼입니다. 북한이 ‘철도 기동 미사일연대’를 만들어 3량짜리 기관차에서 KN-23과 같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을 보고 TEL보다 훨씬 위협적이라 생각했습니다.”

“원잠은 필요 없어”

   — 얼마 전엔 SLBM(수중발사탄도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현재 북한의 SLBM 개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수중 바지선에서 쏠 것으로 예측됩니다. 북한의 최종 목적은 원자력잠수함 보유가 아니라 한미 양국이 탐지할 수 없는 물속에 감출 수 있는 발사대가 필요할 겁니다. 북한이 원자력잠수함을 만들어 동해상을 지나 하와이 인근 태평양까지 진출해 미국 본토를 공격한다는 가정은 난센스입니다. 무슨 수로 북한의 핵무기를 장착한 잠수함이 동해에 우글거리는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잠수함을 회피해 작전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건 원자력잠수함을 보유해야 한다는 분들이 사용하는 논리일 뿐입니다.”

   — 우리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를 반대하나요.

   “재래식 잠수함만으로도 충분해요. 원잠은 멀리, 빨리 가는 데 필요한 무기체계입니다. 우리가 현재의 재래식 잠수함으로 하루면 북한 연근해에 도달해 작전할 수 있는데, 왜 원잠을 보유해야 하나요. 원잠은 건조 비용, 정비, 교육훈련 등에서 막대한 예산이 있어야 하고, 최소 3척을 갖춰야 기본적인 작전이 가능합니다. 미국의 경우, 원해(遠海) 작전을 위해, 그리고 한반도까지 오려면 2~3주일이 걸리기에 25노트 이상으로 달리는 원자력잠수함이 필요한 겁니다.”

   — 동북아 지역 유사시 미국이 동남아 해역까지 원해 작전을 우리에게 요청하지 않을까요.

   “SLBM을 장착한 북한 잠수함을 잡는 방법은 북한 기지 앞에서부터 밀착 감시하고 추격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소수의 대형 잠수함이나 원잠보다 정숙성과 은밀성이 뛰어난 다수의 209급, 214급 잠수함으로 북한 잠수함 기지를 포위해 매복하는 것이 적은 비용으로 탐지 확률을 높이는 길이죠. 미국이 호주에 원잠 건조를 허용한 것도 미국의 중국 잠수함 감시 임무를 분담하는 조건인 겁니다.”

“우라늄 농축 착수해야”

   — 최근엔 미국에서 ‘한일 우호적 핵무장 허용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건 학자들이나 정부 밖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입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미국이 한일 핵무장을 허용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 성급한 판단입니다. 다만, 과거엔 우리의 핵무장에 대한 담론에 대해 미국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것은 사라지고, 우리를 설득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장이 기정사실로 되어가고 있으니까, 우리의 핵무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는 어려워진 거죠.”

   — 독자적 핵무장 잠재력은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지금부터라도 우리 과학기술계가 우라늄 농축에 착수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라 우라늄 농축을 하지 못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건 오해입니다. 한미 원자력 협정은 미국산 천연우라늄이나 미국 기술과 장비를 사용해 농축할 때는 20% 이하의 농축으로 미국의 사전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미국의 천연우라늄을 도입하지 않고 농축 장비를 개발하거나 제3국에서 도입하면 얼마든지 농축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법적 제약 때문이 아니라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등 우리 과학기술계가 관심이 없어서 안 하는 겁니다. 대통령이 결심해 우라늄 농축 연구개발에 돈을 투자하면, 아마 5년 이내에 원심분리기법을 이용한 농축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고 봅니다.”

“9·19 합의, 이적성 농후”


   — 9·19 남북 군사합의는 북한이 폐기를 선언했습니다. 이 마당에 우리는 북한의 3차 정찰위성 발사 다음날인 지난해 11월 22일 비행금지구역 조항의 효력을 정지했는데요, 군사합의를 전면 폐기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북한이 폐기해준 게 참으로 고마운 일이죠. 일단, 북한이 폐기했다면 9·19 군사합의는 우리가 굳이 폐기하지 않더라도 지킬 필요가 없는 겁니다.”

   — 2018년 9·19 군사합의는 어떤 측면에서 문제가 있나요.

   “이적성(利敵性)이 너무 농후한 합의죠. 치명적 독소조항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각 20~40km 폭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1조 2항입니다. 대북 감시 정찰의 사각지대를 넓혀 우리의 눈과 귀를 다 막아버리고 북한에 기습공격의 자유를 보장해준 합의니까요. 9·19 군사합의와 같은 전 세계 모든 군비통제 합의는 군사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겁니다. 이건 군사적 신뢰 구축(CBM·Confidence Building Measures)이 아니고, 신뢰 파괴(confidence destruction) 조치입니다.”

천영우 이사장은 “9·19 군사합의에 가담한 사람들은 왜 그런 합의를 했는지 밝혀내야 한다”면서 “우리가 하마스식 공격을 당했다면, 수천만 명의 국민들이 일거에 사지(死地)로 내몰렸을 것”이라고 했다.

   — 북한과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합의는 어느 방향으로 해야 할까요.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하는 현 상황에서 군사적 신뢰 구축과 적대행위 방지에 필요한 군사합의는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아니라 1992년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국 간에 체결한 ‘항공 정찰 자유화 조약(The Open Skies Treaty)’을 모델로 한 남북 간 상호 정찰 제도의 도입입니다. 또한 해상 완충 구역과 육상의 군사훈련 금지구역을 철폐하는 대신, 대규모 군사훈련의 사전 통보와 상호 참관을 허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캠프 데이비드 협정, 중국 견제 레버리지 확보”

   — 2023년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한·미·일 3국 간의 협정은 동아시아 전략 지형과 역학 관계를 재편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데요, 이사장님께선 ‘외교적 이변’이라 평가했더군요.

   “캠프 데이비드 협정은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지형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결정적 포석이고, 3국 정상의 절묘한 의기투합이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무모하고 과감한 베팅을 한 것이 캠프 데이비드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봐요. 결국 한일관계 정상화의 바탕 위에서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고, 중국의 공세적 팽창 정책을 견제하는 레버리지를 확보했다고 생각합니다.”

   — 협정문에 한반도 통일을 명시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라지요?

   “지금껏 미국과의 협정에서 한반도 통일을 명시할 때는 ‘통일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통일의 최종 상태’에 대해 미국과 일본이 지지를 표했습니다. 그 최종 상태는 ‘자유롭고 평화롭게 통일된 한반도 지지(We support a unified Korean Peninsula that is free and at peace)’입니다.”


  “그동안 힘을 과시하는 중국 특유의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옛날 조공 질서로 재편하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이란 허황한 꿈이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고 역풍을 맞게 된 겁니다. 게다가 중국 경제도 어려워지고, 인민들의 불만도 폭발하니까 지금은 주춤한 느낌입니다. 어떻게 보면 휴지기(休止期)죠.”

“트럼프, 한·미·일 공조 체제 허물지 않을 것”


  — 동맹을 ‘기생충’으로 보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지금의 한·미·일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까요.

   “지금 만들어놓은 한·미·일 3국의 협력 체제를 트럼프가 완전히 파괴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현재의 한·미·일 관계는 당파적 이슈라기보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하나의 숙원이 달성된 것이거든요. 만약 한·미·일이 수십 년간 공들여 쌓아 놓은 한·미·일 전략적 공조 체제를 훼손하면 트럼프는 공화당 내에서도 상당한 반론에 부딪힐 걸로 봅니다. 트럼프도 한·미·일 공조 체제가 중국을 압박하는 지렛대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면, 절대로 한·미·일 공조 체제를 허물지 않을 것입니다.”

   — 지난달 초 반중 후보인 라이칭더(賴淸德)의 당선으로 중-대만 문제, 그리고 대만과 남중국해 주변의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만약 이곳에서 분쟁이 발생한다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이 미칠까요.

   “전임 차이잉원(蔡英文) 총통보다는 반중(反中) 성격이 강한 사람이지만, 기본적으로 현상 변경을 추구해 중국을 자극하지는 않을 겁니다. 미국도 양안 긴장 관계가 무력 충돌로 번지는 것을 관리할 것이고, 우리가 개입을 고려할 만큼 중대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중국도 대만에 상륙하기 위해서는 170km의 해협을 건너야 하는데, 대만의 하푼 미사일을 맞아가며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지는 못할 겁니다.”

김정은의 러시안룰렛

   — 우크라이나의 전훈(戰訓)을 한반도에 어떻게 적용하고 대비해야 할까요.

   “군사적 측면만 본다면 드론하고 통신을 꼽고 싶어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압도적으로 우세한 것이 일론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운영하는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의 이용입니다. 우크라이나 장병들은 스타링크로 전장에서 인터넷을 연결해 러시아군을 코앞에서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면서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드론으로 러시아군 지휘관을 사살하고, 드론에 포탄을 실어 진지에 숨어 있는 러시아군을 폭격하기도 합니다.”

   — 김정은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침략자 러시아를 돕는 ‘러시안룰렛’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에 대해 우리 정부 차원의 공식적 경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북한이 무기를 러시아에 제공하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에 우리도 ‘살상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지 않는다’는 그 지침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다고 선언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의 무기가 러시아에 가고, 러시아의 군사기술 협력이 이뤄지는 순간에 선언해야 러시아에 대한 우리의 지렛대를 더 강화할 수 있습니다.”

천영우 이사장은 “규범이나 체제보다는 힘의 역할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외교·안보 전략을 고민 중”이라면서 “가장 좋아하는 두 개의 금언(金言)은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할 고통을 당한다’(아테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 ‘우리는 영원한 동맹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국익이 영원할 뿐이고, 그 국익을 따른 것이 우리의 의무다’(영국 총리 파머스턴경)”라고 했다.


[월간조선, 2024-02-25]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2403100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