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장윤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중국은 해협(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원유의 91%를, 일본은 62%를 얻으며, 다른 많은 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면서 다른 나라를 위해 이 항로를 보호하고 있는가. 이런 나라 모두는 자신들의 배를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6월 24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세계 원유 수송로의 경찰 역할을 더 이상 혼자서는 하지 않겠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메시지는 8일 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발언에서 예고된 내용이다. 미 CBS방송에 출연한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의 경우 80% 이상의 원유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송하며 한국과 일본과 같은 나라들도 이들 자원에 엄청나게 의존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우리는 호르무즈 해협이 계속 열려 있게 하는데 깊은 관심이 있는 국가들을 확대해 우리가 이 일을 해나가는 데 도울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방향을 제시했다. 트럼트 대통령의 발언과 강도만 약할 뿐 ‘다국적 해양 경비대’ 구성을 공식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 자급자족이 가능해진 미국은 중동의 원유 수입을 걱정할 필요가 사라졌다.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던 중동 국가들과 정치적, 외교적 타협을 할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이란에 대한 제재와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울러 더 이상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 수송 안전을 확보해야 할 당위성도 약화됐다. 이들 지역에서의 이해관계에 이전처럼 깊숙이 개입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 ‘호르무즈 해협 호위 연합체’다.
靑 “우리 상선은 우리가 보호해야”
현재 미국 주도 호위연합체 참가 의사를 밝힌 국가는 영국뿐이다. 독일은 거절했고, 일본은 주저하고 있다. 한국은 “검토 중”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 가운데 주한 이란 대사는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국가의 파병도 반대한다. 한국도 파병하지 않길 바란다. 우리 지역의 안보는 이란과 주변 국가들이 지키는 것”이라는 쐐기를 박고자 했다. 세계 원유 수송량의 3분의 1이 통과하는 길목인 너비 30~40㎞의 호르무즈 해협에서 대한민국의 외교는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경제적 측면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지역이다. 우리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이라크 등 중동에서 국내 원유 수입량의 70% 이상을 조달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그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 역시 국내 수입량의 30%를 상회하는 양이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야만 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LNG 수입량은 총 4404만t으로 이 가운데 32.4%에 해당하는 약 1230만t을 페르시아만에 위치한 카타르로부터 들여왔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에너지 안보의 결정적 요충지인 셈이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 심화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다면 우리로서는 당장 에너지 수급에 비상이 걸린다. 원유의 경우 공급 감소로 국제 유가는 올라가고 그로 인해 관련 산업은 물론 국민 실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LNG도 마찬가지다. 전량 해외에서 수입하는 LNG 특성상 30% 이상의 카타르산 LNG가 공급되지 않으면 국내 도시가스 수급에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선박업계와 경제전문가들은 과거 이란-이라크 전쟁 때처럼 국제 호송단을 운용해 항행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유조선 공격이 반복된다면 보험료 인상, 승조원의 탑승 기피 및 임금 상승 등이 발생돼 국제유가 상승과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우리 경제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청와대는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국익을 기준으로 결정하겠다”라는 원론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계획에 동참한다는 측면 이전에 우리 국익을 위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우리 상선을 우리 스스로 보호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한다”는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의 최근 발언처럼 내부적으로는 파병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이란과의 관계를 고려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8월 14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란은 우리와 경제·건설·금융·석유 등 다방면에 국익이 걸려 있어 이를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며 “국익이라는 것은 너무 명확한 문제기 때문에 (미국은) 북한이나 일본 관련 사안과 연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실 이란과의 교역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비한 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대(對)이란 수출액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0.7%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총 해외건설 매출에서 이란 사업의 비중도 2.2%에 그쳤다. 다만 2017년 제재 해제 이후 대림산업, 현대엔지니어링 등이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그해 우리나라 해외 수주 실적의 18.1%가 이란에서 나오는 등 한때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진행이 더뎠고 미국 제재 복원으로 사업은 중단된 상태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 지렛대 역할로 활용”
장윤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이란산 원유 수입은 2018년 하반기 중단되었다가 2019년에 재개되면서 그 비중이 10% 수준을 회복했다. 특히 2017년 기준 이란에서 수입했던 원유의 70%를 차지한 콘덴세이트는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다”면서 “석유화학업계에서 그에 맞춰 정유시설을 갖췄는데 이란 원유수입이 금지되면서 수입선 대체 등으로 인해 수익성 측면에 타격이 있다. 전체 산업을 봤을 때 이란과 교역이 끊겨도 심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이란과 관계를 숙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8년 말 이란의 원유 확인매장량은 1556억 배럴로 베네수엘라·사우디·캐나다에 이은 세계 4위 수준이다. 천연가스 확인매장량은 32조㎡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천연자원 빈곤국인 우리나라로서는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나라 중 하나인 것이다. 게다가 전체인구는 약 8200만 명으로 사우디 인구(약 3300만 명)의 2.5배 수준이며, 그중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71%를 차지하는 등 풍부한 부존자원과 노동력으로 인해 성장잠재력은 높은 편이다. 장 연구원은 “중동 내에서 큰 시장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이란이 개방되면 협력할 부분이 상당하다”고 말한다. 이란 시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경제적 측면만 고려할 수 없는 것이 국제사회의 정치·외교다. 한국은 미·중 무역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또 일본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대다수 안보전문가들은 “부담스러운 미국의 요구”라면서도 우리 유조선을 우리가 지킨다는 점에서 파병의 명분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는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유조선의 안전한 항행은 한국의 국가이익과도 긴밀하게 결부돼 있기 때문에 미국의 제안은 우리로서도 공감해야 될 부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하겠다고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파병을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앞서 올 6월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개방성·포용성·투명성이라는 역내 협력 원칙에 따라 신남방정책과 인도태평양 전략의 조화로운 협력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처음으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협조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그간 한국은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견제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해 온 바 있다.
박 교수는 공고한 한·미동맹을 위해서도 파병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한·미연합훈련이 축소되고 일본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면서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상황들이 펼쳐지고 있다”며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거절한다면 ‘한·미동맹 위기설’까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에 협조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박 교수는 참가 의사를 밝힌 국가가 한 곳뿐인 상황에서 한국이 파병에 앞장서는 모습은 부담이 될 수 있다고도 말한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을 이용하는 국가들의 공동 협력을 이끌어 내야 한다”며 “10월 말 태국에서 열리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한중일 정상회의나 11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같은 국제행사에서 ‘호르무즈 해협 호위 연합체’ 참여를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 해양 협력을 주도하는 외교를 병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호르무즈 파병 문제는 그 자체로만 판단하기 힘든 사안”이라고 말한다. 한·미 간에 북핵문제를 비롯해 방위비 분담금 협상, 전시작전권 이전, 중거리미사일 배치 등 여러 가지 장·단기 문제가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월간 중앙, 20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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